어린 시절부터 사로잡힌 기술자의 길

‘나호선 엘렉트릭’을 방문한 첫인상은 어수선함 속의 질서정연함이라 표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10평 남짓한 사무실 한가운데 놓은 그의 작업대 위에는 수리를 부탁받은 장비들이 놓여 있고, 그 옆으로 각종 측정기와 모니터, 현미경, 저울들이 나열돼 있다. 옛날 장비들이 쌓여있는 진열대와 함께 지금은 흔히 볼 수 없는 진공관 등 구형 오디오 기기들과 스피커들을 구경할 수 있는 것도 이곳만의 매력. 특히 장인의 사무실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것은 수백, 수천 개의 부품을 정리해둔 수납함이 벽면에 차곡차곡 채워져 있다는 점이다.
작은 부품 하나라도 사소하게 여기지 않고 꼼꼼하게 카테고리를 매겨 분류해 놓은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자신의 일을 좋아하고 또 자부심을 가지는지 확인할 수 있다.
“고장난 장비나 기계를 고쳐서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이 일이 너무 재미있고 즐겁습니다. 기업에서 사용하는 대형 장비에서부터 대학교에서 쓰는 분석기기 등을 주로 수리하다 보니 새로운 기기들을 접할 기회도 많아 몰랐던 세계를 새롭게 알아간다는 희열이 있어요.”
이른 아침 출근하고 늦은 밤 퇴근하기까지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종일 사무실에 틀어박혀 작업에만 몰두하는 나호선 장인은 작동을 멈춘 기계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일인 것 같아 보람도 크고, 또 그만큼 허투루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이 일이 너무나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두하다 보니 어느새 24년이 지나버렸다 말하고 웃는다.
어린 시절부터 움직이는 공구나 기계장치가 돌아가는 원리가 궁금해 멀쩡한 기계를 뜯어보기도 했고, 전구 소켓을 만지다가 감전되기도 했었다는 나호선 장인. 어릴 때부터 기계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깊었기에 기술자의 길은 곧 천직이었고,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 말한다. 그만큼 자신의 일에 자부심이 크다는 소리로 들린다.
“평생 기계를 만지고 수리하는 일에만 매진하다 보니 잘 놀 줄도 모르고, 딱히 잘할 줄 아는 취미도 없어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평생 할 수 있으니 일이 곧 취미인 셈이죠.”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의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이만큼 높고 자부심 또한 크니 그에게 부여된 장인이라는 호칭은 당연한 수순이 아닐는지.

수리업이라는 일 자체가 혼자서 작업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다른 사람과 호흡을 맞춘다는 점이 저에게는 취약한 일일 수 있습니다.
함께 협업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또 장점을 공유할 수 있어서 시너지를 낼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작업이었습니다.

다시 세운’, 새로운 변화를 위해 천천히 함께 걷다

나호선 장인이 있는 세운상가는 대한민국 기술자들의 실리콘밸리로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지만, 점차 낙후하고 쇠퇴해 철거의 대상으로 논의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었다. 그러다 2017년 ‘다시 세운 프로젝트’를 통해 기존 산업과 새로운 기술의 융합, 분야를 초월한 협업 등을 통해 새로운 변화를 모색해가고 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나호선 장인은 창업 새싹 기업이나 기술과 제작 분야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멘토 역할로 기술을 전수하기도 했다. 특히 음향기기에 관심이 많아 진공관 앰프를 직접 만들어 성능을 시험하는 작업을 하기도 했는데, 그 특장점을 살려 청년 새싹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진공관 블루투스 스피커를 제작하기도 했다.
“수리업이라는 일 자체가 혼자서 작업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다른 사람과 호흡을 맞춘다는 점이 저에게는 취약한 일일 수 있습니다. 함께 협업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또 장점을 공유할 수 있어서 시너지를 낼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작업이었습니다.”
‘다시 세운 프로젝트’를 통해 세운상가를 다시 찾는 젊은이들의 발길이 늘어 반갑다는 나호선 장인은 지금도 세운상가에는 좋은 기술자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한다.
세운상가뿐 아니라 소위 ‘이 바닥’에서 그의 명성은 널리 알려져서 간혹 대기업과 작업이 이뤄지기도 한다는 데, 몇 년 전 현대중공업 미포조선소에 직접 들어가 기판을 수리해 몇백 톤의 넘는 장비가 무사히 가동하게 했던 경험은 그에게는 잊을 수 없는 보람으로 남는다. 장비를 수리하는 일은 부품만 갈면 되는 것 같아도 생각보다 그리 간단한 작업이 아니고, 고장 원인을 찾아내는데 만도 장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생산성을 높여야 하는 산업 현장에서 오랜 경력의 수리 장인들을 필요로 하는 이유기도 하다.
“수리업은 세상의 모든 기기를 다루는 일인 만큼 아무리 경험이 많다 하더라도 방심하면 안 돼요. 엄청나게 많은 회로와 다양하게 쏟아지는 부품들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서 해야 하고, 이와 관련해 더 많이 공부해야 합니다.”
나호선 장인은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는 점이 수리업의 가장 큰 매력이라 말한다. 기계를 들여다보면 ‘아, 이런 회로가 있었구나, 이 부품은 이렇게 사용되는구나, 수리를 하려면 이 회로를 이렇게 연결하면 되겠구나’와 같은 설계도가 머릿속에 그려지고, 이를 실현해내는 일이 마치 퍼즐을 맞춰나가는 것처럼 즐겁단다.

내일을 준비하는 행복한 기술 장인

‘양공고심(良工苦心)’, 즉 장인에게는 뜻한 바가 많은 만큼 고심이 많다는 말을 자주 하는 나호선 장인에게는 세 가지 철칙이 있다.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기술을 갈고 닦아야 하고, 항상 겸허하고 솔직하며, 고객의 입장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기계는 거짓말을 안 하므로 명확히 모르면서 대충 넘겨짚는 과오를 범하면 안 돼요. 꼼꼼하게 측정결과를 짚고, 논리적으로 명확히 따지고 이해해야 합니다. 고친다는 것은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일이니까 해결사의 긍지를 가지고 완벽하게 일처리를 하는 것이 의뢰를 맡긴 고객에 대한 도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나호선 장인이 최근 가장 고심하고 있는 일은 부품의 계도를 다시 쓰는 작업이다. 수리하는 장비에 들어가는 부품별 기능과 용도, 특성과 성능 등을 일일이 조사하고 분류해 부품마다 고유일련번호를 부여한 다음 자료화하는 일이다. 자신이 장비만 해도 수십 개에 한 장비에 들어가는 부품만 해도 수천 개이기에 해도 해도 끝이 안 보이는 작업이지만 자신 혼자만의 것이 아닌 훗날 다른 이와 작업 시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데 사용하고 모두를 위한 자산이 될 것을 믿기 때문에 작업을 멈출 수가 없다고 한다.
모든 사무기기가 자동화로 바뀌었지만, 고장 난 기계를 고치는 일은 한 땀 한 땀 사람의 손길이 직접 닿아야 한다. 평생 기계를 만지고 수리하는 일에만 매진하다 보니 잘 놀 줄도 모르고, 딱히 잘할 줄 아는 취미도 없다는 나호선 장인. 하지만 내일 세상이 끝나도 사과나무를 심는 노인처럼 평생을 수리업에 매진하며 사는 것이 즐겁다고 말하며 누군가를 돕고 나누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그가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진정한 장인이자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